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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2

    배영섭

     

    “2011년 신인왕”

    “배치로”

     

    2011-2012-2013 삼성의 3 연속 우승에 굉장한 공헌을 했’었’던 사나이 배영섭.

    신인왕임에도 반짝 선수로 뽑힌 이유는

    그의 불꽃이 아쉽게도 딱 이때 불타올랐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귀신같이 거품이 걷혔다.

    더 안타까운 것은 뜨거웠던 3 시즌 동안 풀타임으로 뛰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배영섭은 09년도 2차 4라운드로 삼성에 지명되었다.

    전국체전에서 당한 어깨 부상때문에 2010년도를 재활군에 머물렀고,

    본격적으로 2011년부터 그의 프로생활 +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전반전>

    타격에 부진하던 이영욱을 밀어내고 1번 타자로 낙점되었고,

    잘 나가는 신인들의 공통된 패시브처럼 배영섭 역시 시즌 초반 '말 그대로' 날라댕겼다.

    하지만 이후 체력적인 부분과 부상으로 후반기 전력 이탈되었는데..

    배영섭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던 삼성은 그대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미친듯한 회복력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입성한 배영섭은 한국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를 이기고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우승 프리미엄으로 신인왕까지!

    2011년도 배영섭의 성적은 99경기 0.294타율 100안타 2홈런 24타점 51득점 33도루(3위)였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솔직히 배영섭이 삼성 우승에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규정타석 미달이었던 부분.

    그리고 후반기를 꽤나 많이 날려먹었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임찬규의 9승6패7세이브가 임팩트가 더 컸었다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우승 프리미엄도 일부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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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전>

    12년도를 맞이한 배영섭은 2년 차 징크스를 제대로 겪었다.

    서태웅과 같이 전반기를 버리고(?망치고?), 후반기에 살짝 부활했고,

    작년과 비슷하게 한국시리즈에 맞춰 활약.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견인했다.

    하지만 개인 성적으로 치면 소포모어 징크스를 제대로 맞았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12년도는 우승 빼고는 딱히 좋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2013년.

    배영섭은 자신을 욕하던 안티들을 비웃듯이 리그 최고의 테이블세터가 되었다.

    비록 여름을 맞이하고 체력적인 문제를 겪었으나 여전히 최고의 테이블세터 중 하나였다.

     

    하지만!!! 

     

    9월 8일 LG전 리즈의 151km의 속구를 머리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받은 뇌진탕의 후유증은 배영섭의 남은 프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어쨌든 겨우 겨우 복귀해서 팀의 3년 연속 우승에 일조했고 경찰청에 입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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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장전>

    제대 후 불어난 체중 탓에 장점이었던 주력과 넓은 외야 수비 능력을 잃었다.

    대신에 장타력에 집중하는 노력도 보였지만...아쉽게도....

     

    이후 등장한 괴물 같은 신인 박해민, 구자욱 그리고 김헌곤에 의해 백업으로 밀려나다 시피했는데,

    주력과 수비는 박해민에게, 타격은 구자욱에게, 장타력은 김헌곤에게 밀리면서  더이상 자신만의 강점을 보일 수 없었던

    배영섭은 결국 방출되었다.

    2019년 SK에서 다시 시작했으나 단 30게임만을 출전하고 또 한 번의 방출을 겪었다.

     

    통산 기록은 633경기 0.275타율 534안타 16홈런 169타점 300득점 94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신인왕 출신임에도 그의 전성기는 짧았다.

    짧은 전성기임에도 많이 회자되는 이유는 배영섭의 불꽃이 타올랐던 시기와 삼성의 3년 연속 우승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만큼 삼성의 왕조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배영섭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생각보다’ 짧고 굵게 활약하였던 배영섭은 16년부터 시작된 삼성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

    마지막 선수는 2016년 목동에서 타올랐던 어느 투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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